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_ 김미진

'이것은 소설인가 수필인가 환상인가 실재인가. 그는 작가인가 철학가인가 천재인가 미치광이인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하지 아니하지도 않는 의식과 무의식의 혼재 속에서 나는 누구이며 당신은 누구이며 삶과 죽음은 또 무엇인가. 시종일관 몽환적 언어로 자아와 몰아의 경지를 넘나드는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한 우울증 환자의 판타지이다.'

위 인용은 출판사 서평이다. <우울 씨에 관한 48가지 비밀>은 강진군 도서관 독서대학 초청 강사로 시인이자 작가인 저자와 직접 만났을 때 소개받은 신작이다.

출판사 서평과 제목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듯 이 책은 형식과 언어의 쓰임이 낯설다. 우리가 이미 나누어 놓은 장르와 상용하는 언어 규칙에 너무 익숙한 탓이다. 몽상인가 싶으면 시 같고, 삽화를 읽다 보면 옴니버스 소설 같고, 자서전인가 싶으면 정신분열증 환자의 병상 기록 같기도 하다. 아니다, 이것은 세계를 향해 자의식 강한 작가 자신을 피력하고 싶은 욕망이 찾아낸 노출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쿳시는 자신에 대해서 쓰기 위해서 수많은 사물들을 끌어들이고, 그 자신을 사탕으로 바꿔 빨아 먹을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p.69.)

말하기나 글쓰기 행위는 두말할 것도 없이 노출증의 일종이다. 그것이 거짓일 때조차 세상을 향한 자기 존재의 확인을 목적에 두고 있음이다. 이 책 속에는 가방, 소설의 주인공, 바퀴벌레, 고양이, 개, 꽃, 불덩어리......무엇이든 되지만 그 무엇도 아닌 자아와 초자아의 의식 활동이 활자로 떠돌면서 무한한 상상과 슬픔과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아라는 건 없다. 나도 한때 자아를 믿었다. 하지만 자아는 마음의 속임수다. 주체가 모호한데 자아, 곧 나라고 하는 게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 자아 때문에 힘들었다. '나'라고 하는 게 어딘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나를 찾아 헤맨 세월이 나의 과거다. 없는 자아를 찾으려 애를 쓰면서 내 마음은 병들었다. (p.97.)

영화 <배드맨>의 대사를 인용한 이 고백은 자신도 모르게 자아와 세상과의 불화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모두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자는 언어의 조합과 소리, 화자와 대상의 위치를 마구 뒤섞음으로써 기성 질서를 낯설게 건축하고 있다. 사물과 자신의 벽을 무시로 드나들며, 언어로 정의된 세계를 부정함으로써 그 너머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신은 언어일 뿐이다. 불안도 언어다......달마는 언어로 언어라는 관념을 깨부술 수 있다고 했다. (p.209)

그의 무모한 언어도단의 유희에 슬금 들어가 보자. 모네가 희미한 시력으로 본 그대로 그려낸 <수련>이 의외로 감상자에게 아름다운 환상을 선사하듯이, 48개의 비밀은 48개의 공같이 독자의 의식 면에 닿는 순간, 그 접지의 특성대로 제각각 튀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고의 늪은 의외로 깊다는 것을 이해하는 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