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어떤 날의 기억
 
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_ 김순임
 
우리는 간혹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루 이틀 지난 일보다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게 되기도 한다. 모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어떤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한 기억. 우리는 삶에서 이 모든 걸 겪을 필요는 없지만, 어떤 일들을 겪었다면 그것들은 분명 우리에게 조금의 변화는 줄 것이며, 겪고 있는 문제와 마주했을 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섬세한 문체로 깊은 울림을 이끌어내는 열 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구멍> 십이 년 전 여름, 구멍에 빠져 죽은 친구에 대한 기억과 안타까움. <코요테> 어머니, 점점 멀어져 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 <아술> 자녀가 없는 부부의 집에 하숙하는 학생에 대한 감정.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젊은 여자가 나이 많은 남자와의 비밀스런 사랑, 현실. <강가의 개> 비정상인 형, 그리고 사건들. <외출> 보수적인 공동체 여자아이와의 데이트, 안타까움. <머킨> 사랑, 이별, 또 다른 사랑. <폭풍> 누나와 함께한 추억들. <피부> 낙태, 너무 쉽게 포기한 새 생명에 대해 <코네티켓>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의 비밀스런 행위, 불륜, 동성애

앤드루 포터의 작품들은 예민한 감성으로 포착한 심리와 암시를 내포하고 그 끝에는 삶의 진실이 있다. 참혹한 사건일 수도 있고, 내적인 깨달음일 수도 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떠오르고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 있다. 시간의 힘에 의해 풀려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코네티컷>은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의 비밀스러운 행위를 목격한 아들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불륜, 그것도 동성애 관계. 아들은 어른이 된 뒤에야 남은 기억을 통해 어머니의 당시에 다가간다. 평범한 일상과 간절히 원하는 삶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해더는 또래의 콜린과 아버지뻘의 교수 로버트 사이에서 번민한다. 미래가 보장된 헤더를 사랑하는 콜린은 물질이며 편안함으로 영혼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로버트는 빛일 것이다. 콜린을 택한 해더의 인생은 그럭저럭 행복하지만 로버트와의 기억은 맺어지지 않았기에 영원할 것이다. 물질을 취하고서 빛을 좇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에 서늘한 상처와 비밀을 간직한 사람들. 지나쳐버릴 수 없는 어떤 기억의 주변을 끊임없이 서성이는 삶에 대해서 섬세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