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밤을 걸어갈 때

강진군도서관 우리들서평단 김순임

  아버지는 마당의 빨랫줄 이야기를 했다. 넋을 잃은 채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사이 날이 밝아오고 어디선가 지지배배,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밤 사이에 아버지가 한 일이란 그 자리에 붙박인 채 시선을 대문에서 마당의 빨랫줄로 옮긴 것뿐이라고. 살아오는 동안 아버지가 무심코 하는 어떤 말들에 의지해 무너지려는 어떤 시간들을 건너오기도 했다는 생각을 제비 이야기를 들으며 했다. 크지 않은 나직한 아버지의 목소리. 지난밤에 뭔 일이 있었건 간에 날은 밝아오는 것잉게 ...... 그것은 틀림이 없당게, 같은 말들.

 - 우리 집 처마 밑에다 집을 지어서 새끼를 낳은 제비들이 그 새벽에 빨랫줄에 나란나란 앉어서는 지지배배거리는 것여. 그것을 한참 바라보는디 이번엔 어미제비가 처마 밑의 제비집으로 날아들더만 새끼제비한티 처마 밑 집에서 바깥으로 나오는 법을 가르치더라. 새끼제비들이 네댓마리나 되었는디 어미는 빨랫줄까지 날게 해줄 요량으로 시끄럽게 떠들며 날아왔다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하는데 나중에 보니 새끼들이 한 마리씩 집을 나와서 이만큼 날았다가 다시 들어가고 또 이만큼 날아왔다가 다시 들어가고 하더라 ...... 넋을 놓고 마루에 걸터앉아서는 제비들이 하는 짓을 바라봤고나. 날이 밝고 해가 뜰 무렵에는 어미고 새끼고 할 것 없이 제비들이 죄다빨랫줄에 나란나란 앉아서는 지지배배, 참말로 시끄럽게 굴더니만 ...... 어느참에 보니까는 어미를 따라서 새끼제비들이 한 마리 한 마리 허공을 차고 날아가야. 날쌔게 허공을 날아오르지 못하고 다시 빨랫줄로 돌아와 앉는 뒤처진 새끼 옆으로 다시 어미가 와서 앉아 뭐라 뭐라 하는 것 같더니 ...... 날아가고 또 날아가고 하더만 어느참에 보니 빨랫줄이 텅 비어 있더라. 그때는 울 힘도 잃어뿌려서 멍하니 빨랫줄만 보고 있었을 뿐인디 그 아침의 빨랫줄이 안 잊히지야. 하도 자주 생각이 나서 나중에는 어머니가 그날 아침에 그렇게 내 옆에 있었던 것이네 싶은 것이 ......(P97)

  그 눈 내리는 겨울밤, 늦게 귀가한 아버지가 엄마가 내놓은 구운김에 밥을 싸서 빙 둘러앉은 우리들의  입에 차례로 넣어주던 순간을 나는 여러번 글로 썼다. 그때그때마다 비유가 달랐겠지만 우리는 무슨 참나무 숲의 딱따구리 새끼들처럼 아버지가 싸준 김밥을 쏙쏙 받아먹었다고. 그때는 입안에 남아 있는 고소한 김의 여운을 느끼며 다시 내 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릴 뿐이었으나 언젠가 어떤 인터뷰에서 행복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문득 그 겨울밤이 떠올랐고 아버지가 김에 싸준 밥을 받아먹었을 때 참 행복했다고, 대답했다. 큰오빠가 그 글이 실린 지면을 패널로 만들어 내게도 보내주고 여기에도 가져와 작은방 책장 앞에 세워두었다. 아버지가 읽고는 그때 행복했냐?고 물었다.

 - 예, 아버지.

  아버지는 헛헛하게 웃었다. 내가 행복했다는 그때를 두고 아버지는 무서웠다고 했다.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무서웠다고.

 - 무서우셨어요? 뭐가요?

  내가 의아해서 묻자 아버지는 얼굴에서 웃음을 지우고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 그것이 설명이 되냐?

  아버지가 말을 거두려 하자 엄마가 옆에서 거들었다.

 - 너그들이 먹성이 얼매나 좋으냐. 양식 걱정 없이 살게 된 지가 얼마나 되간? 오늘 저녁밥 먹음서 내일 끼니 걱정을 하며 살었는디. 밥 지을라고 광으로 쌀 푸러  갈 때 쌀독 바닥이 보이는 때도 있었는디. 그 가슴 철렁함을 누가 알것냐. 쌀독은 점점 바닥을 보이는디 먹성 좋은 자식 여섯이 마구 달려들어봐라, 안 무서운가 ......(P1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