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김미진

찬 기운이 돌면서 여기저기 부음이 들린다. 오래 익은 습관 같은 삶의 터전을 두고 낯섦을 찾아 나선 곳에서 직장이라고 다니다 보니 일면식도 없는 이의 부음뿐만 아니라 각종 모임에 연루되기 일쑤다.
 
'한국에서 고독은 아직 낯선 단어다. 고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문화에서 고독은 실패한 인생의 특징일 따름이다. 그래서 아직 건강할 때, 그렇게들 죽어라고 남들 경조사에 쫓아다니는 거다. 내 경조사에 외로워 보이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 -p22.
 
일면 혼자를 못견뎌하는 집단적 관습을 꼬집는 것 같지만,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평탄한 교수직을 버리고 일본 전문대학에서 만화를 그리며 보낸 4년간 줄곧 격하게 외로웠던 것 같다.

새로운 시도 끝에 만난 혼자만의 시간을 심리학적으로, 르네상스적으로(?) 시시콜콜 박학다식 잔뜩 차려놓은 것이 마치 9,900원짜리 뷔페에 온 듯 칼로리가 가볍기도 하고 무겁기도 하다. 먹고 싶은 것만 먹어도 되고 입에 거칠어도 새로운 맛을 추구한들 누가 뭐라나!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장난 끼 묻힌 입담이 동네 문구점에서 만화경(萬華鏡)을 보는 듯도 하다.
 
<시간>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매년 반복하는 달력을 만들고, 무한에의 두려움은 3차원 <공간>을 2차원에 가두는 원근법의 소실점을 찾아내고, 요동치는 <마음>의 변화에는 심리학을 만들어 이해하려하는 인류의 산물이 문화일진대, 이 책은 문화심리학자다운 집요한 호기심의 산물로 사료 된다.
 
한국 남자들이 골프에 환장하는 이유가 홀마다 매번 새로 시작하는 재미 때문이라는 말은 그만의 화법이지만, 삶이 지루하다 싶으면 다 잃고 떠밀려서가 아닌 능동적 외로움을 품어 보라는 말이지 싶다. 인간의 외로움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아직 혼자 오래 자신을 들여다 볼 용기가 없는 이들에게 권해 본다.

삶의 게슈탈트(Gestalt:형태-사물을 지각할 때 사물의 각 부분을 따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통합된 형태로 파악하는 현상)는 <전경>과 <배경>의 관계가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에서 더욱 건강해 진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사진기법 <아웃 포커싱>을 인용, 한 때의 전경이 배경이 되고 배경이 전경이 되는 방법으로 <사람, 장소, 관심>을 바꾸라고 권한다.

새로운 관심이 생기면 그에 따른 사람을 새로이 만나게 되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곳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논리다. 그 <아웃 포커싱>이 필요한 겨울밤, 격하게 외로운 실존과 맞닿기를 꿈꾸는 이에게 저자의 익살스런 농담을 군고구마처럼 한 봉지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