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요, 책식주의자?

 

우리들 서평단, 시인 김미진

 

주인 없는 구피를 수족관 채로 데려왔다. 얼결에 떠맡았는데 보름쯤 밥을 주다 보니 정이 든다. 소리가 나면 먹이 주는 줄 알고 일제히 모여들어 꼬리가 머리에 닿도록 군무를 추는데, 가끔 장난기로 유리 벽을 톡톡 쳐 불러 모으는 재미도 있다. 물결을 가르는 그 동작들이 색깔 있는 선으로 표시된다면 아마 몬드리안보다 더 화려한 기하학적 무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자극이 없으면 물고기도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수초 사이를 신나게 보이지 않는 곡선을 긋고 다니는 작은 생물체도 물만 있는 곳에 혼자 오래 두면 바닥에 내려앉아 동작이 둔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포식자들을 피하느라 절로 맹렬히 살아가다가 인간의 보호(?) 아래 작은 어항에 갇혀 살면서 나타나는 증상이지 않을까?

리더가 가는 방향이 적확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3차 백신까지 견뎌냈지만, 코로나-19로 시작된 전쟁은 여전히 막연해 보인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백신 패스를 두고 다소 이해가 엇갈려 반목하고 불안감으로 서로의 의심을 투명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데모크리토스의 말대로 분별이 필요한 때이다.

모두를 믿지 말고 가치 있는 이를 믿어라. 모두를 신뢰하는 것은 어리석고, 가치 있는 이를 신뢰하는 것은 분별력의 표시이다.

경제 불황과 불신의 시대, 오히려 바깥세상이 감옥이 되어 에워싸고 있는 이 무기력의 시대에 가난한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나, 무엇으로 기쁜 하루를 살 수 있나 생각이 깊어진다. 전기자동차로 유명한 테슬라()의 회장 일론 머스크처럼 세상의 돈줄을 거머쥔 이들의 꿈이 멀리 화성으로 날아갈 때, 좁은 공간에 갇힌 구피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아니, 생각이란 걸 할까?

생물체는 생각을 하든지 안하든지 세포가 숨을 쉬고 움직인다. 세상이 어찌 변하든 우리는 먹고 숨쉬고 잠드는 일상을 반복한다. 단지 인간과 다른 생물체가 차이가 있다면 글을 쓰고, 읽는다는 점이다. 나아가 생존과 무관한 예술 활동을 한다.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그리고 지워질 물 위의 그림 같더라도, 구피처럼 우리 또한 쓰고, 지워지며, 살아있음의 무늬를 기록할 것이다. 이런 때여서 더욱 흔들림 없이 일용할 책을 읽고 도서관을 즐겨찾는 이들의 취미가 높고 귀하고 아름답다.

곧 강진군 도서관 옆에 어린이 도서관 개관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어린시절부터 마음에 책꽂이가 생겨 차곡차곡 평생 부담없이 책을 고르고 책을 먹고 책의 맛을 즐기는 책식주의자들이 많아지겠거니, 화성에 가지 않고 화성에 닿는 기쁨의 어느 하루가 싹트는 예감이다.

아이들 손을 잡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도서관 가는 그림,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선택을 요구당하는 인류 위기의 순간 늘 그래왔듯이 임기응변과 함께 분별력이 더욱 절실한 시대이다. 촛불처럼 모여서가 아니라 개인이 독거하며 각개격파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즐거운 놀이문화 하나를 빼앗아 갔다. 이제 우리의 회식이 사라진 자리, 책식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