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_ 김미진
 
요즘은 맹모삼천지교가 새롭다. 50년 넘도록 이미 도시에 살았음에도 사는 곳이 바닷가로 옮겨지니 슬그머니 바다 것들에 스미고 있어 드는 생각이다. 어느새 아침 산책길에 잡힐 듯 갯벌에 드는 황새무리와 굴 망태를 끌고 오는 모습이 일상이 되면서 바다 비린내와 습기에 익숙해졌다.

물속에 하얗게 길이 나는 것도 알고 아침저녁 물 높이를 보며 물때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그런 끝에, 물고기가 '친애하는 인간에게' 올리는 글이라니 궁금해지는 건 당연지사, 해양생태계 만물 사전인 데다가 천만다행으로 재미까지 쏠쏠한 책을 만났다.

저자는 30년간 우리 바닷물고기를 연구해온 토종 '물고기 박사'다. 국립수산과학원에서 20년간 일곱 번 이삿짐 싸고 풀며 뱃멀미와, 질척한 갯벌에서 '바다 사나이'로 고군분투 한 결과 2013년 대한민국 바닷물고기에 대한 첫 보고서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인류보다 더 긴 세월 동안 끝없이 진화를 거듭하며 드넓은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존재들, 지구 생물의 80%가 바다에서 살지만, 우리가 그 존재를 아는 건 고작 1%이다. 저자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머지 99%를 밝혀내고 이를 나누기 위한 도정에서, 지금도 심해에서 수많은 생명체가 꿈틀거리며 우리에게 보내고 있을 말 없는 신호에 대해 <新 자산어보>를 전하고 있다.

갯벌가문(?)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 속에 <제1장. 한반도 물고기의 품격>만 보자면, ①생긴 대로 산다? 사는 대로 생겨진다 고등어, ②천지신명에게 바쳐지던 귀하신 몸 명태, ③사덕을 갖춘 선비의 몸가짐 조기, ④절도 있는 은빛 칼날의 아름다움 갈치, ⑤추운 겨울을 견뎌 성장하는 과묵한 수행자 조피볼락, ?망둥이가 동경하는 높이뛰기 선수 숭어, ⑦죽더라도 같이 죽는 참사랑꾼 홍어 등 목차를 읽는 것만으로도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딱 들러붙어 소설처럼 독자를 끌고 간다.

정약전 선생은 참홍어를 음란함의 상징으로 보았다. 홍도 아낙들의 노랫가락에 "나온다/ 나온다/ 홍애가 나온다/ 암놈 수놈이/ 불붙어 나온다"라는 구절이 있음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유교에 심취했을 그 당시에 정약전 선생이 참홍어가 삼강오륜을 지키는 일부일처주의자임을 알았더라면 그렇게 묘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p.99.

생물의 세계는 계보도 즉, '분류체계'가 있다. 종의 분화 과정에 따른 족보이다. 갯벌은 이 생물들의 분류체계가 찍힌 계보도라 할 수 있다. 서해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생태학적 가치가 뛰어나다. 과거에는 남한에만 4,000km에 달했지만 우리가 채 그 가치를 알고 연구·보존하기도 전에 잇따른 간척으로 많은 부분 사라져버렸다.

이 책 제목에서 역설하듯, 각종 물고기의 재미있고 유익하고 은밀한 생태, 이러한 해양생태계를 소개하는 문맥 안에는 천혜 자원 보존 노력을 촉구하려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보인다. 예를 들면, 뱀장어 '품귀' 현상의 주된 원인으로 저자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 어업인의 실뱀장어 남획, 둘째 하굿둑 등의 개발 사업이다. 실뱀장어가 바다와 하구를 오가며 산란할 터전이 전부 사라지고 있으니, 그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 다 사람이 원인이다. 저자가 바닷속 물고기의 대변인이 되어, 환경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부르짖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인간뿐만 아니라 더불어 사는 생태계 전반의 비명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신기하고 특별한 물고기 사생활은 덤으로, 실은 심각하게 해양생태계, 가깝게는 서해 갯벌의 보존 노력에 대한 우리의 실천 목록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