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_ 김미진

파리 카퓌신 대로 그랑 카페 지하 방은 열 편의 짧은 영화 연속물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 사람들로 붐볐다. 각 영화는 40초 남짓한 길이에 주제는 '담요 위에 뛰어내리기', '아기의 식사', '바다에서 수영하기' 등 직접 관찰한 일상생활에 가벼운 희극을 가미한 내용이었다.

이 상업성을 띤 역사적인 최초 상영회는 30대 초반의 루이 뤼미에르 형제가 주도했다. 1894년 에디슨의 영사기를 이어 그들이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로 아버지의 공장에서 퇴근하는 일꾼을 찍은 영화가 1895년 3월 22일 개인적인 자리에서 상영된 후의 일이다.

이렇게 시작된 영화가 국내에서 시연된 것은 언제였을까? 우리 영화계는 1919년 10월 27일 활동사진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서울 단성사에서 개연 된 날을 한국영화 기점으로 잡고 있다. 야외 활극 장면을 극과 연접시킨 12분가량의 토막 필름으로 아래 인용은 연극 실연 중 삽입될 영화 화면을 제작하는 현장 기억을 묘사하고 있다.

장충단에서 서빙고로 넘어가는 산중턱에 어느 첫 여름날 흰옷 바람의 청중들이 마치 싸움이라도 구경하듯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이들 군중의 시선은 저마다 포장을 젖힌 1915년식 포드 자동차에 쏠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유난히 눈여겨보는 것은 그 차에 타고 있는 세 명의 괴한이었다. 그들은 제각기 일본식 '합비'에 '당꼬즈봉'을 입고...더욱 놀랍게도 백주에 가장행렬이라도 하는 듯 울긋불긋 분장을 하고...호각소리와 함께 청년 하나와 불란서제 목조촬영기를 멘 기사가 나타났다. -p.15

이와 달리 '경성 전시의 경'이 당시 영상 작품의 요건을 갖추고 극장에서 '의리적 구토'보다 먼저 상영됐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의 원류로서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평론가로서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에서 60년을 현역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해 온 영화평론가인 저자는 1937년 제주 출생으로 1959년 11월 월간 종합지 『자유공론』에 처음으로 「한국 영화평론의 위기와 과제」를 발표하고, 1959년 12월 격월간 『시나리오 문예』를 통해 영화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1960년 6월에는 이영일 등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발족했다.

이 책 『영화와 시대정신』은 1부 영화와 역사, 2부 영화 작가·배우론, 3부 영화 일반론 등 총 3부, 38편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말미의 '김종원의 한국 극영화 100선'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작년 2019년은 한국영화가 100년을 맞는 뜻깊은 해였다. 한국영화 100년의 역사와 함께 한평생 동고동락한 한국영화 100년의 탐구작 『영화와 시대정신』은 한국영화사의 총결산이자 중요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 시를 쓰면서 영화평론의 길에 뛰어드는 과욕을 부렸다. 처음에는 마땅한 지면이 없어 자갈밭을 걷는 듯한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선배 평론가들이 갖지 못한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1980년대 이후 10여 년간 신문, 잡지 등 활자매체와 방송, 텔레비전 등 전파매체를 통해 영화리뷰를 쓰고 해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저자의 평문에는 문학을 했던 문사로서의 내공도 녹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