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역사의 비는 얼마나 오래 내려야 하나

[책 한권이 강진을 바꾼다] 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김진곤

조정래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왜 하필이면 이런 슬프고 척박한 땅에 태어났을까. 그런데 왜 문학을 하려 하는가. 그럼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이 내 청춘을 바치며 풀려고 했던 화두였다.』라고 문학 하는 자의 고뇌를 말하고 있다.
 
「상실의 풍경」은 조정래 작가가 지금으로부터 약 40여년 전인 1970년대 대한민국 상황들을 소재로 하여 쓴 단편 소설집이다. 따라서 소설의 내용이 대부분 암울하다. 문학작품의 특성 중의 하나인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초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이니 그 당시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소설에 담겨진 어두운 과거의 아픔은 그 당시엔 이해하고 느끼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던 것 같다.
 
이 단편 소설집에는 10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첫 번째 '누명'은 조정래 작가의 데뷔작이어서 감회는 특히 다르게 느껴졌다. 주인공인 태준이 카투사로 미군과 함께 근무하면서 겪은 비극을 통해 분단국가의 고통을 말해준다.

"미군의 명예를 손상한 너희 놈들이 사람 새끼야! 미군의 명예에는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다는 걸 알아 몰라. 대답해 봐!" 중대장의 대사가 그 당시 카투사의 처지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분단은 계속되고 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온 지도 40여년이 지난 지금, 카투사의 처지는 어떠한지, 많이 개선되었길 바랄 뿐이다. 특히 이 작품 세 번째에 수록된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은 앞에서 말한 작가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 할 만하게 한다.
 
전직 월간잡지의 기자였던 주인공 중현이 여순사건 때 반란군으로 행방불명된 아버지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을 그린 소설이다. 아버지가 반란군이니 아들도 그렇다는 올가미인지 함정인지 조작인지 강압인지 모를 막다른 골목에 몰리는 주인공 중현이 죽고 싶을 절망에 부딪힌다. 소설의 제목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에서 '20년'은 주인공 이중현이 부모 없이 살아온 험난한 '세월'이고, '비'는 '눈물', '땅'은 주인공이 처한 입장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이 책에 수록된 10편의 작품 모두가 애잔한 여운이 남아 있지만 특히나 가슴 깊이 한스러운 작품하나 선택한다면 '청산댁'이 아닌가 싶다. '청산댁'은 소설의 주인공인 그네의 택호이다. 주인공 그녀의 나이 27세에 전쟁에 나간 남편은 한 줌 재로 돌아왔다. 온갖 고생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지만 불행한 일은 반복된다 하였던가.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이 젊은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전사한 것이다. 실성에 까지 이르렀던 청산댁은 손자 때문에 죽지도 못한 기구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한다. 참으로 애잔하기 그지없다.
 


암울했던 시기에 탄생한 작품들이 수록된 단편 소설집 「상실의 풍경」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의 최대의 비극인 분단된 국가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불행과 비극은 언제나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고, 그러한 일은 반복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