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

 

강진군도서관 우리들 서평단 _ 김순임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되어 다산초당을 거처로 삼고, 바위에 글자를 새기고, 우물을 파고, 연못을 꾸몄다. 초당을 방문하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초당 앞 너른 바위 위에서 차를 달이기도 했다. 강진 유배 생활이 고달픈 18년 귀양살이의 시작이자, 다산을 조선 최고의 학자로 거듭나게 한 18년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산은 환경을 지배하며 살았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주인공이 다산처럼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혼란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22년, 20년간 두 번의 혁명을 겪은 격동의 러시아. 서른세 살의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은 지내던 모스크바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평생 나갈 수 없다는 '종신 연금형'을 선고받는다. 백작에게 이제 호텔은 감옥이자 세상의 전부. 그런데 이 세련되고 고상한 구시대의 귀족은 얌전히 무대에서 퇴장하는 대신, 호텔에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꼬마 숙녀의 놀이 친구, 유명 배우의 비밀 연인, 공산당 간부의 개인교사, 수상한 주방 모임의 주요 참석자로서 백작은 새 삶에 적응해나간다.

작가 에이모 토울스는 보스턴 인근에서 나고 자랐으며, 20년 넘게 뉴욕 맨해튼의 투자 회사에서 일했다. 40대 후반의 나이에 첫 장편 『우아한 연인』을 발표하여 "데뷔 소설이 아니라 열 번째 소설 같다"는 찬사를 받으며 전업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2016년에 발표한 『모스크바의 신사』는 데뷔작의 찬사를 훨씬 넘어서는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구시대 인물인 귀족이 평생 한 호텔에서 지내야만 하게 된 상황. 주인공 로스토프 백작은 니나라는 어린 소녀와 친구가 되어 호텔을 탐험하고, 호텔 직원뿐 아니라 손님들과도 깊은 인간관계를 맺고, 오랜 친구와의 우정을 지속하고, 아름다운 여배우와 사랑을 나누고, 세월이 흐른 뒤에는 니나가 남기고 간 재능 많은 아이 소피야의 아버지 역할을 맡기까지 한다.

이 모든 일들이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지만, 백작의 음식, 와인, 문학, 역사, 철학, 음악, 영화 등을 아우르는 교양과 지식덕분에, 주변 사람을 친구로 만드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 덕분에 이야기는 전혀 지루하지 않게 진행된다. 독자들을 끊임없이 미소짓게 할 그의 유머 감각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백작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대공이 백작에게 얘기해준 '역경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또한 백작이 피치 못하게 맞닥뜨린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삶의 목적을 찾고 어떻게 잘 적응해나가는지를 느껴보시길 바란다. 책을 읽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흠뻑 빠질만한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이다.